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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준비

[전역 준비]#1. 전역에 대한 그간의 고민들

by msh0512 2022.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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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년 화천에서의 군생활 이후로 "전역"을 여러번 고민해 왔다.
그러나 현실적 문제때문이었나, 아님 뭔지 모를 두려움, 그것도 아니면 그냥 게으르기 때문일까? 전역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어느덧 10 여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물리적으로 2024년 6월 전역 예정이다. 그러나 그 전역일을 1년 앞당겨 이른바 "명예전역"이란걸 하려 한다.

그 동안의 변화는 무엇이 있었나?

먼저, 2008년의 사건으로 5년 후인 2013년에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일이 있다.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만 군의 진급체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저런 기스가 있느냐, 없느냐 뿐이다.

어쨌든, 이 사건이 내 군생활의 유일무이한 오점이라는 생각이 언제나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본업인 군생활을 전처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보직에 대한 관심도, 평정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그저 육사출신이 이것밖에 안되냐는 식의 욕은 먹지 않을만큼만 최소한의, 소극적인, 그리고 피동적인 군생활을 해 왔다.
오죽하면 적어도 세번은 주어지는 진급의 기회 측면에서도 난 그 3년동안 한번도 진급결과 공고문을 직접 보지 않았고(어차피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러다 보니 극히 낮은, 아니 거의 없던 기대감에 실망도 별로 크지 않았다. 중령이후 나의 군생활은 한마디로...장교로서의 군생활이 아닌, 마치 병사나 군무원처럼 해왔던건 아닐까?

그럼에도 다행인건, 항상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추구하긴 했던 것 같다.

내게 큰 상처를 주었던 지형정보 관련 업무를, 그렇게도 싫었던 그 일을 0000본부에서 수행했다. 00특기인 공군 과장, 00 기능의 육군 장군 부장 밑에서 육군의 공병병과 장교로 근무하는 것은 때로는 내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더럽고 외로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의 일을 최상급부대 실무자로 수행하면서 실무적으로 많은 보람도 느꼈다.

그리고는, 000 근무를 꼭 해보고 싶어서 결국 3년 정도 EHCC를 거쳐, 0000실장을 하게 되었고,
영국에 교환교관으로 나가 2년간 임무수행하면서 또 많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 경우는 특히, 공고를 보자마자 가족들을 생각하며 지원해야 하나, 아님 과거 처분기록때문에 어차피 안될테니 애초에 시도도 하지말아야 하나, 이 둘을 고민하였으나, 와이프의 "안돼도 손해볼건 없지 않느냐?"란 말에 힘을 내 지원한 것이 향후 나와 가족들에게 의미있는 시간으로 되돌아 왔다.

귀국후에는 00사에서 "상무대 이전사업"을 계획하는 시설장교로 근무하였고,
국방부 000에서 000 이전사업과 0000사업 담당 PM(Project Manager)으로서 한동안 시설공사에만 몰두하던 좋은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이젠 평택에서 진짜로 전역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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